2009년 1월 용산4구역 주민들을 ‘망루’까지 떠민 건, 이른바 ‘용역 깡패’들의 폭력이었다. 재개발 사업자 측은 이들을 고용해 하루라도 빨리 강제집행을 진행하려고 했다. 이주 절차의 지연은 곧 사업비용의 증가였기 때문이다.
국가는 이들의 사적 폭력을 사실상 허용했다. 법원은 거주민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사업자 측의 강제집행 신청을 인용했다. 철거용역들이 맞은편 건물에서 물대포를 쏘는 데도 경찰은 지켜보기만 했다. 끝까지 국가는 이들이 망루에 올라간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10년이 지났지만, 용산 참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여전히 재개발·재건축 과정에서 원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용역 깡패들의 폭력을 피하려고, 그들만의 ‘망루’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강제집행을 단순히 개인 간 재산권 분쟁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개인의 거주권과 생존권 등을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원주민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국가의 역할을 제대로 명시하기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철거용역의 사적 폭력이 난무하는 강제집행 현장
부동산 인도·철거 집행은 민사집행법에 따라 진행된다. 법원이 사업자 측의 인도 집행 청구를 인용하면, 집행관의 지휘 아래 강제집행이 진행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집행관이 운용하는 집행인력과 사업자 측이 동원한 용역직원 등이 뒤섞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적 폭력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발생한다. 이는 민사집행법이 강제집행에서 물리력 행사의 주체, 범위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사집행법 제5조는 집행관의 강제력 사용에 대해 “채무자의 주거·창고 그 밖의 장소를 수색하고 잠근 문과 기구를 여는 등” 물건에 한정하고 있다. 철거현장 인권지킴이단 공대호 변호사는 “비교법적 고찰을 통해 해당 법안의 입법 의도가 사람에 대한 집행관의 강제력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행관도 사람에 대한 강제력 사용을 법적으로 허용받지 못했는데, 현실은 집행관이 운용한 집행보조자가 집행 실무를 진행하며 사람에 대한 강제력을 사용한다. 민사집행법은 집행관에게만 집행 권한을 부여했는데도 말이다. 법은 집행관에게 강제력 행사를 통제할 수 있는 관리·감독 규정도 두지 않았다.
아울러 집행관법에서 집행보조자의 권한이나 선임 등에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집행관 규칙에서 집행관이 필요할 때 기술자 또는 노무자를 보조자로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할 뿐이다.
집행보조자 운용은 국가 사무를 수행함에도, 경비업법에 따라 선임되는 사업자 측 용역인력보다 느슨하다. 공 변호사는 “극단적으로 집행관이 집행 현장에서 사업자 측이 모집한 용역인력을 선임하더라도 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라고 꼬집었다.
집행관법에 따르면 집행보조자는 신분증을 착용할 의무가 없다. 강제집행을 수행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해야 위법한 행위가 발생했을 경우 책임자를 확인할 수 있다. 집행 실무자의 신분증은 집행과정에서 과도한 물리력 행사를 제한할 수 있는 수단이다.
실제 강제집행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대규모의 용역들이 동원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경비업법은 용역직원들이 위력을 과시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하는 등 경비업무의 범위를 벗어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현장에선 용역직원 다수가 강제집행을 직접 수행하거나, 심지어 과도한 물리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단순히 경비업법을 개정해 용역직원의 강제집행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만으로 사적 폭력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재개발 현장에서의 ‘용역 깡패’들에 의한 폭력은 ‘경비용역’이 아니라 ‘철거용역’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라고 꼬집었다. 재개발 현장에 오는 용역업체는 철거업무를 주로 하는 건설업체들로, 이들에게 경비업법의 적용을 받는 경비업무는 미비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법원 집행책임자와 함께 오는 1일 공무원 형식의 집행보조자들도 주로 철거업체 소속 용역들의 인적 네트워크로 동원된다”라고 덧붙였다.
나아가 사적 폭력을 방관하는 경찰의 태도도 비판을 받는다. 경찰은 ‘민사문제 불개입 원칙’을 핑계로 아무 권한이 없는 보조 집행자들과 용역직원들이 원주민에게 강제력을 행사하는 형사 문제가 발생해도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다.
강제집행에서 반복되는 폭력 없애려면 원주민의 권리 지켜져야
강제집행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민사집행법과 집행관법, 경비업법 등의 개정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폭력의 구조를 깨뜨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책임연구원은 “단정한 복장에, 욕을 하지 않고, 몽둥이를 들지 않으며 정중히 법원 집행관 입회하에 퇴거가 이뤄진다고 해도, 대책 없이 나갈 수 없는 이들은 버틸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그러한 버팀은 업무방해, 공무집행 방해라는 법 위반이 되고, 법의 실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필요 최소한의 물리력이 사용되게 된다”라며 “이주를 시키기 위해 폭력과 협박이 난무하지만 이주할 수 있는 대책이 너무나도 부실한 상황에서, 폭력의 근절은 폭력 행위 자체만을 규제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거주민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도시정비법과 토지보상법의 개정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행 도시정비법은 세입자의 이주 의무만을 부여해, 법원이 사업자 측의 인도 집행 청구를 인용하면 원주민의 항소와 관계없이 집행이 강행된다.
강제집행 이후 세입자들은 제대로 된 보상금을 받기 더 어려워진다. 건축물이 철거될 경우, 보상 불복 절차에서 감정평가 대상이 될 건축물 자체가 없기 때문에 감정평가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손실보상절차를 규정하는 토지보상법에는 이런 경우에 대한 규정을 따로 두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현행 도시정비법과 토지보상법 규정에 세입자가 정당한 손실보상금을 다툴 수 있도록 불복 절차에 대한 예외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또 토지보상법에 따라 지급되는 보상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크다. 원주민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경우 과거 누려왔던 주거수준, 영업수준 등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도 실거래가에 한참 못 미치는 보상금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는 토지보상법이 사업으로 인한 개발이익을 배제한 가격을 보상금으로 책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현 변호사는 “토지보상법은 공익성이 강한 사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것이어서, 사익 추구성이 강한 도시정비법에 그대로 준용하는 것이 오히려 불합리하다”라고 지적했다.
현 변호사는 “특히 보상액 산정 시 개발이익을 배제하도록 하는 조항을 준용하는 것은 개발로 인한 이익을 사인인 조합에 일방적으로 귀속시키는 불평등한 규정”이라고 비판하며, 토지보상법에 따라 손실보상을 하라고 규정한 도시정비법에 보상액 산정 시 개발이익을 반영하라는 문구를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법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장 관심을 받는 법안은 ‘강제퇴거금지법’이다. 해당 법안은 개발사업에서 ‘인권영향평가’의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현재 법률로 교통영향평가·환경영향평가 등을 통해 개발사업으로 교통이나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리 예측·분석하는 것처럼, 인권영향평가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영향평가는 강제 퇴거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을 반영해 모든 원주민이 재정착할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기초조사로도 활용될 수 있을 거라 기대된다.
“사람은 결코 철거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강제 퇴거는 편의가 아니라 최종 수단이 돼야 한다”는 2016년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처럼, 강제집행 개발보다 사람이 우선될 때 용산 참사는 과거로 남을 수 있다.
강석영 기자 getout@v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