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면옥 등 세운3구역, 지주들 ‘재개발 반대 소송’
법무법인 "서면 동의서 날짜 없고, 설명 부족"
판결에 따라 을지면옥 철거 위기… 北실향민 "아쉬워"
서울시 "도심 주거 공급, 재개발 후 주거율 90%"
서울 을지로의 대표 맛집 중 하나인 을지면옥, 안성집, 양미옥, 을지로 노가리골목 등이 ‘도시 재생’ 사업 일환으로 철거위기를 맞았다. 을지면옥은 "재개발 계획에 반대한다"며 단체 소송에 동참했다.
서울 중구 입정동에 있는 을지면옥은 우래옥, 을밀대, 필동면옥 등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 평양냉면 맛집 중 하나. 을지면옥 사장 이윤상(92)씨 등 ‘세운3-2구역’ 땅주인 14명이 2017년 7월 서울 중구청을 상대로 "재개발 계획 인가 과정에 절차상 하자가 있으니 무효"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사업시행인가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을지면옥 재개발 동의하지 않았지만 철거 위기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혜안 공대호 변호사는 "이 지역 재개발을 추진하는 시행사 한호건설 측에서 받은 서면 동의서에 작성날짜가 기재되어 있지 않은 등 실제로 동의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절차적으로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시행사 측은 고령의 지주들에게 어떤 사업을 하겠다고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고 홍보 인력을 앞세워 동의를 받았다. 일종의 ‘불완전 판매’로 볼 수 있어 재개발 사업인가는 무효"라고 지적했다.
을지면옥이 소송에 동참한 것은 수십년간 영업해 온 공간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을지면옥 사장 이씨 등 14명은 세운 3-2구역 재개발에 동의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재개발 구역 내 땅 주인 75% 이상의 동의만 얻으면 재개발을 할 수 있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 따라 앞으로 가게가 문을 닫거나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 한다.
◇ 철거위기에 처한 양미옥, 안성집 등 을지로 토박이 식당
철거 위기에 처한 것은 을지면옥 뿐만이 아니다. 세운 3-2구역엔 1957년 문을 연 안성집이 있고, 세운3-3구역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즐겨 찾았던 양미옥과 1969년 개업한 통일집이 있다. 서울 중구청에 따르면 세운 3-3구역도 재개발을 위해 사업시행 신청을 한 상태로, 인가를 검토 중이다.
또 세운 구역 안에는 공구상과 철물상, 금속을 다루는 공업소, 가구·조명·타일·도기 판매상 등이 밀집해 있다. 한때 ‘도면만 가져오면 우주선도 만든다’고 했던 곳이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시계획·부동산 전공)는 "세계적으로 도심 안에 제조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 드물다. 이런 지역을 파괴하는 것은 정책 실패"라고 했다.
서울시 측은 을지면옥 등 세운3구역에서 사라질 유명 음식점에 대해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한호건설은 현재 서울 중구 을지로4가역 인근에 ‘써밋타워’를 짓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써밋타워와 세운3구역 시행사가 같다. 시행사 측은 철거 대상 지역에 있는 유명한 음식점을 써밋타워로 유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포의 장사법’ 저자 박찬일 셰프는 "요리를 하던 사람이 새로운 곳에서 똑같은 음식을 만들더라도 장사가 전보다 잘 안 된다"며 "원래 가게의 운치가 사라진다는 건 엄청난 손해"라고 했다.
◇ 서울시 "주거 공급 늘리는 일, 식당·공방은 이전하면 된다"
그러나 최종 판결 결과와 관계 없이 을지면옥이 철거될 가능성은 있다.
서울 중구 관계자는 "사업승인이 떨어졌기 때문에, 시행사에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해 토지 보상과 영업손실 보상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이 지역을 철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철거가 진행 중인 세운 3-1, 3-4, 3-5 구역의 보상엔 1년 가까이 걸렸다. 시행사가 보상 절차를 시작하면, 을지면옥 냉면을 내년쯤부터는 못 먹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시행사 측은 을지면옥이 있는 세운3-2구역에 지하 7층, 지상 20층 규모의 오피스빌딩과 상가를 신축할 계획이다.
이 지역에 재개발 바람이 분 것은 2006년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당시 세운상가를 철거 후 공원으로 만들고, 주변 지역을 재개발해 100층짜리 초고층빌딩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업은 진척되지 않았다.
2011년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은 재개발이 보다 쉽게 진행될 수 있도록 2014년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변경 결정을 내렸다. 을지면옥이 있는 3만1911㎡(약 9670평) 면적의 세운3구역은 3-1, 3-2 등 10개의 작은 구역으로 쪼개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초고층 빌딩 대신 지상 20층 규모의 주상복합을 지을 수 있게 돼 시행사가 사업을 추진하기에 부담이 적어졌다"며 "구역별로 땅 주인을 접촉하면 돼 동의를 얻기도 편해졌고, 사업을 시행하려는 의지가 반영됐다"고 했다.
박원순 시장이 세운3구역 재개발을 추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도심 주거 공급’이다. 서울시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의 주거비율을 종전 60%에서 90%로 높여 주택을 확대 공급할 예정이다. 강맹훈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은 "도심에 공공주택을 늘려 직주근접을 실현하고 도시문제 해결과 도심 활성화라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만들어내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박 시장은 도심을 비롯한 기성 시가지를 활용해 주택을 공급하는 공공주택 혁신모델을 언급하기도 했다.